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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교문제참고-한민족
작성자 shalb555
작성일자 2009-07-05
추천수 519
조회수 10115
 

제목 : 환국 12국 중의 수메르국  

수메르인들은 한국인 들이다.

수메르 문명 =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인들은 어디선가 홀연히 메소포타미아 (현 이라크)지역에 나타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펀주: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 -> 에게문명(현 터키지역) -> 이집트문명, 그리스문명)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2개의 강)이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두개의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카락의 사람들" (Black Headed People)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이스라엘)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옷 만드는 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고 물들여 (염색하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집을 지을 정도였다.

지금 발견되고 이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그 당시 수메르인들은 이미 경제거래를 했음.)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이스라엘)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그리스문명과 히브리(이스라엘)신앙은 수메르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

기원전 2000년경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 수메르와 한국 -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수를 세는 단어)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붙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 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數詞)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필자는 수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펀주: "아"는 아침 아이 에서 보이듯이 시작을 뜻함. 아 -> 하 ( -> 하나, 한)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 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 지구라트 = 피라미드의 원조.)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와 같은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고대한국의 문명은  몽고 티벳 수메르 등 세계로 전파된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수메르문명은 그 옆의 지역인 지금의 터키지역으로 전해져서 유명한 "에게문명"을 이룬다.

몽고에서 발견되는 수메르문명과 같은 유물은 사실은 수메르인들이 만주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하는 또하나의 증거이다.

고대한국은 12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 "수밀리"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이라크)지역으로 가서 "수메르문명"이 일어나고

고대 한국인들의 일부가 몽고 등으로도 이동해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문명을 가르쳐 준 것이다.

"수밀리" 란 "소머리"라는 말을 한문으로 옮겨쓴 것으로 보인다.

만주에 소머리강 즉 牛首河(우수하)가 지금도 있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부여"의  5개의 큰 집안 중 하나가 "우가(牛家)" 즉 "소 집안" 이었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고대한국문명과의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김상일 기자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 - 오마이뉴스

2003/04/14 오후 2:44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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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주택단지들을 파 들어가 보다가 고고학자들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사 책에 보면 인류 문명의 최초의 문명으로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메르문명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습니다.

프라스틱이나 금속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입니다.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수메르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요,

그 어순( 語順)이 서양이나 중동 사람 말이 아닌,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문장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순이고요,

--"가", --"을" 등의 토시를 붙여서 말을 구성하며,

"밭"을 "받"이라고 하고, "길"을 "길"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집에서는 "아바"라 하고, 남에게 말할 때는 "아비"라 하며,

높은 분을 높여 부를 때는 이름 뒤에 "님"자를 붙입니다.

"하늘"을 "아눌"이라고 하고 하늘을 높인 말 즉 "하늘님"을 "아눌님", 혹은 "아누님"이라고 하지요. 그러한 말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귀하게 숭상하던 꽃이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장미"입니다.

예수님의 별명도 "샤론의 장미"이지요. 찬송가 89장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이 꽃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 인데요,

그것은 바로 무궁화 꽃의 학명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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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의 격언을 하나 소개.

"진리와 함께 걷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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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주:위 격언은 예수탄생 수천년전에 이미 있었던 격언.

수메르의 문물을 배워간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만든 바이블(성경)에 나오는 말.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펀주: 현대 유럽 초기역사책에 보면 유럽 문명의 생성, 이동은

수메르문명 -> 에게문명 -> 이집트문명 , 그리스문명.

유럽문명은 그리스에서 시작.

그 이전의 유럽은 석기원시시대.

그리스인들이 돌도끼 갈고 있을 때 고대 한국에서는 금속으로 도구를 만들었고 진리를 논하고 있었음.) 


<인류의 시원과 환국시대 7대,3301년>



가. 약 300~400만년 전: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

나. 약250~15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중략)

다. 약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vvvvvvvvv (약4만년 전~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

라. B.C 10,000년: 신석기 시대가 전개.

(특히 녹경과 목축으로 인한 식량 생산의 경제활동은 신석기 혁명 혹은 제 1차 산업혁명으로 까지 불리어지는 생활의 큰 변화였다.

신석기 시대의 집단 생활과 공동체 생활은 상당한 수준의 국가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인간의 사회는 점점 집단화 되고, 갖가지 유용한 문명이 개발되었으며, 대규모의 종교의식도 행해졌다. 제단(祭壇)을 쌓고 제천의식도 행해졌다.)

환국이 진정 현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문명의 시원국이라면, 오늘날 인류의 시원에 대해서도 뭔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환단고기」<삼성기>하편에는 현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시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광명족의 환국의 9환족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류의 시조인 한 남자(나반)와 한 여자(아만)가 바이칼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神敎)을 받고 바이칼호를 건너 바이칼호 부근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나반과 아만 이 두분이야말로 유대민족이 말하는 약6천년전의 아담과 이브보다도 수천년이나 앞선 현 인류의 진정한 시조인 것이다.

알타이어 전문 연구가에 의하면, “아빠”, “엄마”의 어원이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기재).

나반-> 나바이-> 아바이-> 아빠

아만-> 아마이-> 어마이-> 엄마

지구상에 갑자기 큰 변화가 생겼다. 즉 약 B.C 8,800년 경에 지구상에 소개벽(小開闢)이 발생한 것이다. 약 10,800년 전에 발생한 하늘과 땅이 무너질 만큼의 큰 변화였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는 지구상의 소개벽은 우주변화의 원리에 의해 약 10,800년 마다 발생한다고 한다. 지구상의 큰 대륙이 바다 속으로 들어갈 만큼 지각변동이 있었고, 동시에 인류문명도 변하게 되었다.



대서양의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과 태평양의 무(Mu)대륙과 인도양의 레무리아(Lemuria) 대륙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꽃 피어온 역사 이전의 문명이 세찬 비바람에 꽃잎이 떨어져 나가듯 바다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은 약 950년전에 하늘과 땅의 이치를 능히 통달했던 사람인데, 그가 처음으로 우주의 1년이 129,600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온난한 기후와 적당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중앙 아시아에 문명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인류 최초의 국가가 생겨났다. 북방에서 다시 북방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처음 생긴 나라가 환국(桓國, B.C7,199~3,898)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천산(天山) 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동쪽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의 중국의 북서부 지역이다. 이것이 북방문명의 출발인 것이다.



B.C 3,000년경의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들이 모두 B.C 7,199~3,898년에 실제했던 중앙 아시아의 환국(桓國)의 신교(神敎)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환국(桓國)의 문명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세계 4대문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환국의 자취>

1. 중국 신강성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 동쪽에 소재한 천산천지(天山天池) 일대에서 신석기시대의 성터(北庭古城遺址)가 발굴됨 → 환국의 중심지로 추정됨.

2. 바이칼호 부근에서 신석기 유적: 배달국 홍산유적 출토물과 유사함.

3, 문헌기록: 진서(晉書) 4이전(四夷傳) -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일군국

중국사고지도집(상해출판사)

당서(唐書) 북적전(北狄傳) - 우루국

삼국사기 - 구다국(句茶國), 매구곡(賣溝谷)





<세계 최고(高)의 피라미드 발견>



2000년 07월 03일 중국 톈진일보에 의하면, 러시아 고고학 발굴단이 티베트 서쪽의 강런보치봉 주변지역에서 세계 최고(最高)의 피라미드와 100개가 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군(群)을 발견했다고 한다.

환국(桓國)이 초창기에 도읍을 정한 위치와 일치한다.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도 수 천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구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고(上古)시대의 유적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요,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나라인 이 환국은 9환족(아홉 족속)과 64민(무리)으로 이루어진 12환국의 연방국이었으며, 3301년간 지속되었고(기원전 7199~3898년), 7명의 환인이 다스렸으며, 문화수준은 구석기말 내지 신석기 시대였다. 역사기록으로 살펴본 7명의 환인과 연방환국의 12분국(分國) 이름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7대 환인 환국의 12분국의 이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환인 (1) 비리국 (7) 격현한국

(2) 양운국 (8) 구모액국

(3) 구막한국 (9) 매구여국

(4) 구다천국 (10) 사납아국

(5) 일군국 (11) 선비국

(6) 우루국 (12) 수밀이국

‘환인’이라는 호칭은 당시의 제정일치, 정교일치 사회에서 통치자 및 제사장을 겸직한 직책이름(관명)이다. 환국문명사의 1대 환인인 ‘안파견’은 ‘만인의 정신적 아버지’라는 뜻이며, 그 후 환국말기 환족의 동서 대이동에 따라 동서양 민족의 ‘아버지’라는 언어에 그 자취를 남기게 된다.

안파견 환인은 백성을 교화(敎化)할 때 천신(天神)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우리겨례는 하느님의 피를 받은 천손(天孫)민족, 천강족(天降族)임을 나타낸다. 우리민족 최초의 종교는 신교(神敎 : 천신의 가르침)이고, 환인이 천산(天山)에서 광명의 도를 체득하여서 국호를 ‘환국’ (桓國 : 광명의 나라)이라 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의 최초의 정신적 철학은 ‘광명이세(光明理世)’라는 광명철학이었다. 우리민족이 태양의 총체색인 백색을 선호하여 백의를 즐겨입는 백의민족이 된 것은 바로 이와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환국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神)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이를 환국이라 하고, 그를 가르켜 환인 천제(天帝)라 불렀다. "

(삼성기 상)

환국이 12분국으로 구성된 것은 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리인 12지지(地支)또는 태양 운행의 1주기인 황도 12순환 통로를 따른 것이다. 위의 표에서 환국의 12분국중 12번째인 <수밀이국>을 봐주시기 바란다.

이 분국이 바로 서양사람들이 인류문명의 뿌리로 여기는 수메르(Sumer)문명국이다. 인류문명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수메르 제국이 환국 12분국중의 하나인 <수밀이국>의 이주민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러면 천산(파미르고원)과 바이칼호 근처에 있던 <수밀이국>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환국말기인 약 6천년전에 인구가 증가하고 기상이변으로 시베리아 지역이 점점 추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2환국의 한 갈래가 성지 태백산(백두산)으로 이동하여 환국의 정통을 지켜내려온 것(환웅의 배달국)이 바로 오늘날의 한민족이다. 이제 그 환국의 대이동 경로를 따라 갈라져 나가 오늘날 여러 민족의 뿌리가 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동 경로 현민족의 뿌리

태백산(백두산) 환웅의 배달국: 한민족(정통 장자민족)

삼위산 방면 몽고초원 몽고족

삼위산(감숙성 돈황현)의 납목동굴 중국민족 (반고씨)

메소포타미아 지방 수메르 제국

베링해협(당시는 아메리카와 연결된 대룩) 아메리카 인디언





<수메르 문명>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Sumer)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 주는 무수한 점토판들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수메르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한글)와 같은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사용했었다. 또한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라트"라는 제천단과 그들이 남긴 유적들에게서 우리 문화와 같은 문화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있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이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니, 환국(桓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BCE 2500년 전

수메르의 씨름모양의 향로 고구려 각저총(角抵塚) 벽화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수메르인들이 건립한 지구랏트이며, 유대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바로 이 수메르 문명권의중심지인 우르(Ur)에서 수메르문화를 가지고 가나안으로 이주한 것이다.



<중국 황하문명>

중국의 황하문명은 B.C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발해 연안의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북만주와 발해 연안의 문명은 천산(天山)에서 자연 자원이 풍부한 바이칼호에 이르는 환국(桓國)의 중심세력이 광명의 근원지를 따라 따뜻한 기후와 풍요한 생활 환경을 찾아 자연스럽게 동남쪽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한국고대문화의 기원』이라는 책에 의하면, 지금까지 중국 황하문명의 전유물(專有物)로 여겨졌던 갑골(胛骨)문화는 본래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발해 연안 북부에서 B.C 3,500년 경에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동북아의 빗살무늬 토기와 적석총, 석관묘, 지석묘 등의 기원지도 발해 연안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고 한다. 발해 연안과 만주 요녕성 일대는 중국의 정사(正史)에서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하는 조선족의 활동 영역으로 고대(古代)에는 한국 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



이들 배달국의 홍산(紅山) 유적지에서는 지금까지 황하 유역에서 나타나지 않던 대형제단, 여신묘, 적석총군,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미국의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아시아의 동부지방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형질), 치아모양 등의 과학적 연구방법(DNA 추적)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부족 최고 지도자 ‘아파치’는 초대 환인 ‘안파견’에서 유래된 것.

- 북미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약 9천년 전의 것이며,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

- 인디언 들이 쓰던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삼태기, 베틀, 어망, 물레 등은 우리선조들이 쓰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것.



결론적으로 한민족은 파미르고원의 동방에 위치하는 천산(天山)산맥을 시원으로 하여,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를 근거로 천지(天地)로 이어지는 경천숭조(敬天崇祖) 전통을 지닌 인류시원의 장자(長子)민족이다.

그리고 이 중앙아시아 천산을 기점으로 북방문명의 시조인 대단위의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 문헌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3 / 글쓴이 : 구자일 / 2005-05-31 오전 08:51:08  


  서요하 신시 지역에서 옥으로 만든 높이 53cm의 마고상이 나왔다.

젊은 남자의 얼굴에 유방이 있고 거기에 커다란 성기를 안고 있다.

이는 조물주 수준으로서 선천은 남자이고 후천은 여자여서

두 딸을 낳았다는 마고의 전설에 부합한다.



역시 그 지역에서

늙은 마고할미의 석상이 나왔다.

눈썹과 주름, 늘어진 유방까지 묘사된 이 마고는 여자 족장으로 고려된다.



두 유물의 연대는 청동기 시대로 고려된다.

한반도 평양 지방의 구빈인가에서는 마고가 왕검에 쫓겨왔다는데---

이 마고는 온갖 동물의 토템 옥기속에서 존재한다.




공자순의 동이열전 


홍사(鴻史) 

이 책은 중국 안리왕(위나라 제7대왕) 10년, 즉 서기전 267년 공자(孔子)의 7세 후손인 공자순(孔子順)이 서문을 쓴 책으로 발해 대야발이 단기고사의 서문을 쓴 시기가 서기 729년이므로 무려 단기고사보다 996년전에 서문이 쓰여진 책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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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鴻史)서문 >

동방에 나라가 있었으니 가로되 동이라 별의 분포로서는 기미(箕尾)이고 땅은 선비(鮮卑)에 접해 있었다



처음에 단군신인(檀君神人)이 있어 드디어 구이(九夷)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니 요(堯)와 더불어 나왔다

우순(虞舜)이 동이에서 났으니 포의자(浦衣子)로부터 수학(受學)하였다

중국에 들어와서 천자가 되어 백왕을 뛰어 넘는 정치를 했다.

광성자(廣成子)는 남보다 월등한 지혜의 도학(道學)이 있어 황제(황제)가 그의 내문(內文)을 받아 요제(堯帝)에게로 그 대를 이은 임금이었다

소련(少連) 대련(大連)이 거상(居喪) 석달을 게으르지 않고 피눈물로 3년을 잘했으니 나의 부자(夫子 = 孔子)가 착하다고 칭찬했다

하우(夏禹)와의 도산회의(陶山會議)에서 부루사자(扶婁使者)를 보내어 국경을 정하였다

유위자(有爲子)는 한얼이 낸 선인으로서 그 빛나는 이름이 중국에 넘쳤다.

이윤(李尹)이 그 문중에서 수학하였다

은나라 탕(湯)이 이윤을 불러 현인(賢人)을 물으니

동방을 가르쳐

- 그 나라는 국세가 크지만 교만하지 아니하고

- 그 나라는 군사가 강하나 침략하지 아니하며

- 그 나라는 풍속이 어질어 가는길을 양보하고

- 그 나라는 배곺은 사람에 밥을주어 안굶기며

- 그 나라는 남녀가 거처를 달리하여 유별하고

- 그 나라는 남녀가 자리를 한테하여 안앉으니

가히 예의 바른 동방의 군자국이다

이런고로 은태사(殷太師) 기자(箕子)도 주(周)나라에 신하 될 마음이 없고, 동이(東夷) 땅으로 피해 살았다

나의 선조인 부자(夫子 = 孔子)도 더럽지 아니한 동이에 살고자 했다

나의 벗 노중연(魯仲連)도 또한 동해(東海)를 밟고져 하는 뜻이 있었다

나 또한 동이에 살고 싶은 뜻이 있다

지난해 동이 사절의 입국하는 그 늠름한 모습을 보았는데 과연 대국(大國)다움의 금도(襟度)가 역력하였다

대저 동이는 수천여년 이래로 우리 중화와 우방의 우의가 있었다

백성들이 서로 가서살고, 와서 살아 접하는 기회가 끊이지를 않았다

나의 선조 공부자(孔夫子)께서도 동이가 더러운 곳이 아니라고 한 그뜻이 여기에 있었다. 고로 나또한 여기에 있었다

고로 나 또한 느낀바 있어 그 실정을 기록하여 뒷 사람에게 보이고져 한다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 10년

(주(周)나라 난왕(난王) 47년 癸巳也)

곡부(曲阜) 공자순(孔子順) 기(記)

- (出 東國烈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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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 기미(箕尾)



동북간방(東北間方)을 의미함.

두 별의 이름 곧 기수(箕宿)와 미수(尾宿)를 말하는데 기주(冀州)와 유주(幽州)가 기미에 해당(별의 호칭에서는 "수", 잠을 잔다는 뜻으로 "숙"으로 발음함)

(2) 안리왕 : 위나라 제7대왕

안리왕 10년은 서기전 267년에 해당되고 발해 대야발이 단기고사의 서문을 쓴 서기 729년보다 996년전이니까 단기고사보다 거의 1000년전의 공자 약 7세 후손의 글이다

(3) 난왕 : 주나라 제37대왕

(4) 공자순의 이 글이 "홍사" 서문으로 되어 있다

추가로 궁금한 사항은 송호수 박사님의 홈페이지가 없는 관계로 전화나 방문을 통한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 전화 738-7750, 이메일 songhosu@korea.com

- 110-240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94번지    

 1 / 글쓴이 : 동이열전 / 2005-01-19 오후 7:28:18  




  <환국/배달국/단군조선의 역사성①>-공빈의 '동이열전'



"동방에 오래된 나라가 있는데 동이(東夷)라 한다. 훌륭하신 단군(檀

君)이 계셨는데 구이(九夷:동이9족)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셨다. 요

임금 때의 일이다. 순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와서 임금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하였다. 동이의 나라에는 자부선인(紫府仙人:배달

국 제14세 치우환웅 당시의 선인) 이라는 도통한 분이 계셨는데 '황제

헌원(중국인의 시조)' 씨가 그 문하에서 내황문(內皇文)을 배웠다"



"그는 '염제신농' 씨의 뒤를 이어 중국의 임금이 되셨다. 중국의 고대

나라인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의(塗山會議)'에 동이의 부루(夫婁:단군

조선 제2세 단군)께서 친히 와서 나라의 경계가 정해졌다. 동이인 유

위자(有爲子:제13세 흘달 단군 당시의 선인)는 하늘이 내신 성인인데

그분에게서 '중국'이라 하는 이름을 얻었고 이윤(은나라 건국공로자)이

그 문하에서 배워서 은나라 탕임금의 현명한 신하가 되었다"



"동이는 그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박하고 후덕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

들이 먹는 것을 서로 양보하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함부로는

섞이지 않으니, 가히 '동방예의군자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은나라

기자(箕子)가 주나라 신하가 되지 않고 동이땅(단군조선)으로 갔다"



"나의 할아버지 공자(孔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나의

벗 노중련도 동이로 가고 싶어한다. 나도 역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

예전에 동이의 사절단이 온 것을 보니 대국인다운 모습이었다. 동이는

대강 천년 이상 전부터 중국과 우방이었으며 사람들이 서로 왕래했다.

위나라 安釐王 10년 곡부에서 공빈 씀"▼공빈의 동이열전. 공빈(孔斌)

은 공자의 7대 손으로 '동이열전(東夷列傳)'을 기록하였다.



《동이열전(東夷列傳)》- 공빈(孔斌 : 공자의 7대손)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병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余亦欲居東夷之意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吾先夫子 印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바이칼호수와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한국문명(마 문명)'에서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2) 

바이칼호수와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리복재 기자 

  

 바이칼호

[한국문명(마 문명)2부] 과거 동아시아에는 ‘고(古)아시아족(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 ‘고(古)아시아족’ 중 일부가 빙하기에 바이칼 호수가 고립되면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생겼고 ‘간빙기(빙하기 중간 중간에 비교적 따뜻해진 때)’에 ‘바이칼리아(밝할인)’들이 바이칼 지역을 탈출하여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고 살기 좋은 황해대평원에 도착해서 당시 원주민들과 화합을 이루었다 본다.



실제로 세계에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이는 생김새도 그렇고 ‘헬리코박터균(Helicobacter pylori)’으로도 증명된다. 

흔히 말하는 한민족은 튀어나온 광대뼈, 낮은 코와 둥그런 머리통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이란 비교적 뒤통수가 덜 튀어나와서 비교적 공모양에 가깝고 이런 둥그런 공모양은 열손실이 적고 부피에 비해서 표면적이 작으므로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사람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러한 특성들은 극히 혹독하게 추운 지방에서 오래도록 살 때 생기는 특성들로서 튀어나온 광대뼈는 부족한 식량 상황 때문에 질긴 고기나 뼈까지 씹어먹기 위해서 턱 주위근육이 커지면서 공간확보를 위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흔히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말해지지만 사실은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때문인데, 한 때 징기츠칸의 몽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불릴 뿐이다. 



 바이칼리안(밝할인)은 한국인의 뿌리인가?

 여기서 독자들은 질문 할 것이다. "한국인이 언제 그렇게 혹독한 추위를 그리 오래도록 겪었는가, 언제 그렇게 질긴 고기 등을 그리 씹어먹었단 말인가?"하고...

그러나 한국인의 선조가 빙하기때 바이칼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때 생긴 특성이라는 것이 학계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 '헬리코박터 균'의 분포로 본 과거의 인류이동과 유전적 분포 지도. 노란색이 동북아시아 고유의 헬리코박터 균. 즉 바이칼리안(밝할인) 또는 전체 고아시아인들의 몸 속에 살던 것.     

 



  

▲ 도표에서 1위가 한국인데, 특히 한국인들에게서는 동북아시아 고유유전자만 나타난다. 이러한 종류의 헬리코박터 균이 한국에 가장 많은 비율로 분포되었다는 도표.   이는 사이언스 2003년 3월 7일자에 실린 연구논문(Traces of Human Migrations in Helicobacter pylori Populations) (논문 저자 - Daniel Falush, Thierry Wirth, Bodo Linz 등)  © 플러스코리아 


2002년 8월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가 쉬울 것으로 본다.

《한민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해답을 한반도 내에서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북방 아시아인과 언어 문화 뿐 아니라 생김새와 유전적 특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국경은 물론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종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 첫 시도로우리나라의 유전학자, 의사, 지질학자, 고고학자, 민속학자 22명과 러시아 학자 4명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이르쿠츠크대에서 ‘동아시아민족의 뿌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시베리아의 성소로 추앙되는 바이칼호를 답사했다.(http://news.naver.com



 한국인의 유전자를 살펴보면 북방계가 약 2/3(바이칼리안(밝할인)과 약간의 유럽인)이며, 남방계가 약 1/3(한반도, 만주 원주민과 약간의 동남아인)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유전자 중에 이렇게 북방계 유전자가 많은 것은 당시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밝할인)의 숫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이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즉, 혹독하게 추운 환경에 있었던 바이칼리안은 원래 비교적 소수였고, 당연히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도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보다 훨씬 적었다.

당시에는 모계사회여서 1부1처제가 아니었고 극도의 험한 환경에서 강한 정신력을 키운 바이칼인들이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 남성들보다 더 많이 여성들의 선택을 받아서 남자 1인당 자식을 많이 낳았던 것으로 본다.

이를 정리하면 한국인의 뿌리는 크게 ▲바이칼리안(밝할인) ▲한반도-만주 원주민 ▲약간의 동남아 등 남방인 ▲약간의 유럽인(백인)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 바이칼호수 알혼섬 붉한(BULKHAN) 바위.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알혼섬이고 알혼섬에서도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바로 이 붉한(BULKHAN) 바위. 징기스칸도 알혼섬에 묻혔다고 추정되고 있다.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최대 수심 1642m인 이 호수에는 전세계 민물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초승달처럼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바이칼호는 길이 640km, 평균 너비는 48km로,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 여기까지 물밑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1급수)

주변의 숲과 초원에서 365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 북극해와 연결된 앙가라강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주용 박사는 “바이칼호는 3000만년 전부터 호수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면서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바이칼호에는 2500종의 동식물이 산다.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호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 어종이 이곳의 명물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이 생성된 지 오래된 호수이고,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90년 미·소 합동조사단은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

맑은 물, 높은 생물 다양성, 많은 온천은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아시아인에게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동아사이언스 기사 참조)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한민족의 역사인가?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사학적으로 인류의 문명발생을 4대 강을 유역을 중심으로 또한 성경기록이 쓰여진 기원전 4000년경으로 알고 있었다.그러나 과학자나 세계 석학들이 주장하는(종교사관에 미친?)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해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류 근본문명을 찾기 위해서 아니 한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먼저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1만년전 피라미드부터 보자. 오키나와는 일본과 대만 중간 정도 지역에 있는 섬들로 일본이 오키나와를 완전 합병한 것은 19세기의 일로서 그 전에 오키나와는 독립국으로서 조선에 조공(조선왕조실록 참조)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 오키나와(류큐 열도) 중에서도 남서쪽 끝에서 해저 고성과 석상이 발견된 지도     



▲ 바다속에 잠겨 있는 오키나와 피라미드(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외국의 다큐멘타리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졌다. 위의 사진들도 외국 다큐멘타리의 캡처 사진.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1만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성들로서 즉, 땅위에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서 바다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바다 속에 있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당시는 일본도 중국도 석기시대였다.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원조 한문명’ 즉 ‘고대 황해대평원 문명’ 사람들이 건너가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과거 빙하기 때는 북극, 남극 등에 얼음(빙하)이 많으므로 바다물이 적어지고 바다가 얕아진다. 황해(서해)는 평균 수심이 44m로 세계적으로 얕은 바다로 유명한 곳이다.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 위 그림은 2004년 호주 시드니대학 고고학센터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그림.  위 지도에서 일본해를 동해(EAST SEA)로 수정해 놓았다.   © 플러스코리아 

위 지도는  2만~1만2천년전 고대 한반도 주위를 대강 그린 것으로, 그런데 당시에는 현 서해(황해)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으며, 현재의 해안선은 약 8천년전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즉 ,지금의 서해(황해)지역에는 말하자면 '고대 황해대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황하]+ [요하] + [한반도 서부의 모든 강들]이 합해지는 실로 거대한 큰 강인 대강(大江)이었다. 지금의 황하보다는 엄청나게 큰 강이었다.

당시 황해평야는 강동(江東: 대강(大江)의 동쪽)과 강서(江西: 대강의 서쪽)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강동(江東) 즉 한반도 쪽만 해도 거대하게 넓었다.

그런데 이 고대 황해평야는 강동(한반도쪽)이 강서보다 살기 좋았을 것이다. 진흙탕물인 황하같은 강이 흐르는 강서 (중국쪽) 보다 모든 맑은 물이 흐르는 강동(한반도쪽)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반도의 강들은 인간이 오염시키지 않는 이상 흐린 강이 없다.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독일과 프랑스가 맥주와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가 물이 맑지 않아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다. 

▲ 전북 무주 금강의 가창오리떼

그래서 매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날아오는 가창오리(바이칼 오리)도 중국쪽으로는 거의 안가고 대부분 한국 쪽으로 날아온다. 그만큼 한국 땅이 살기 좋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대 황해대평원]도 강동이 강서보다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살기 좋은 강동(한반도 쪽)에 사람들이 몰리고 문명이 발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내려온 바이칼리안(밝할인)도 지금의 중국 쪽보다는 한반도 쪽으로 왔을 게 아닌가. 살기 좋은 한국으로 날아오는 대부분의 가창오리(바이칼오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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