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 교 ]
우리나라 통계청자료에 자료에 의하면 1999년말현재 전체인구의 53.6%가 종교(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약절반이 동양종교(유불선)이고 나머지절반이 서양종교라 한다.
얼마 전 불교계에서 종교차별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이슈가 되어 비종교인들과 서양종교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또한 새로운 종교적역사유물이 발견되고 현대과학으로 이를 밝히고(연구논문 학위논문 박물관학예연구 등의 목적), 현대인의 합리적 잣대로 종교서적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기존의 종교적 신념과 마찰하며 세계적 사회문제를 야기 시켰다.
무심코 던진 아이들의 돌팔매놀이에 억울하게 죽는 개구리가 있으므로 비종교인과 종교인의 이웃종교에 관한 언급은 조심스러워야한다.
헌법의 경우는 그 해석과 적용문제를 다루는 헌법재판소가 있지만,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불경 성경 코란의 마찰을 조정해주는 세계적기구가 없다.
지구촌인 글로벌시민으로 불리는 현대인들은 국경과 문화적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며 살고 있다. 타 지역에서 편리하게 살자면 그 지역의 관습을 이해하고 같이 즐기는 길밖에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종교의자유가 보장되고 여러 종교인이 함께 살아가야하는 한반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본소고가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취지에서......
고대국가의 건국과 시조는 물론 성씨의 시조까지 신화 또는 설화(전설)로 취급되어왔다. 따라서 종교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함은 기록과유물의 보존이 여러 가지사건들로 어려웠을 것이고, 새로 발견되는 것은 기존의 그것들과 대치되는 사실일 경우 문제의 파장이 심대하여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종교본래의 목적과 사회적 기능을 해치게 될 것이므로 고민해야 될 점이다.
인간의 두뇌(골)와 신경계의 화학적작용에 의하여 생각(思考)과 마음(精神) 그리고 신념(信念)이 생긴다고 현대과학은 풀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감히 발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주섭리는 천기(天氣)로 취급되어 감히 엿보는 정도였었고 대자연의 그것도 하느님이 하는 일이므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그 이름을 빌어 권력화하고 백성을 통치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국가목표와 정치이념의 이유로 강요되기도 하지만 획일화 된 삶의 양식은 존재하지 못한다. 원천적으로 사람의 먹고사는 문제는 각자가 해결하므로 개인적 영역(마음)까지는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동네마다 지방마다 나라마다 각각의 풍습이 있고 전통적인 풍속이 존중되어야한다고 한다. 이것으로 다양성을 볼 수 있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사회갈등도 이러한 모습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종교도 다양한 삶의 모습이고 문화이므로 먹고사는 문제 중 의식주와 함께 가장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족스러운 먹이활동을 보장받는 가축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 수명을 보장받지 못한다. 닭의 경우 자살까지 한다.
현대인에게 주어진 무한경쟁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가장 큰 스트레스이고 공포일 것이다.
생존경쟁의 과정과 결과(성패),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질병과 돌발사고 자연재해 는 물론 천수를 다하는 죽음까지도 스트레스이고 공포일 것이다.
나아가 버리기 아쉬운 행복한 삶, 그리고 그 공간과 시간과의 결별도 그러할 것이다.
사(死)후 문제까지도..... 사람들은 그 언젠가부터 이 문제를 종교(신앙)적 수단으로 해결해 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자유 보다는 ‘서로 다름’의 이해와 존중이 부족하여 분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저마다의 풍속을 구경하고 같이 즐기듯 하면 어찌될까?,
만약공통의 분모를 찾아 동질성을 부각하고 다름의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어찌될까?,
집밖으로 나가면 다른 집 그리고 동네가 있다. 산위에 올라가면 다른 동네가 보이고 우리 집은 아주 작아 보인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소중했던 그것들이 작고 별로로 보인다. 해외여행을 해보면 거의 모든 것이 완연히 다름을 본다. 때문에 유럽에서 동양인을 보면 반갑고 안면부지라도 한국인을 만나면 고향부터 물으면서 좀 더 가까운 동질성을 찾는 노력을 한다. 결국 최소한 양쪽의 친구나 인척 중에라도 누군가가 같은 고향이면 친해진다.
지금부터 더 큰 공간과 시간 속으로 여행하면서 우리의 그것들을 바라보기로 한다.
특정종교인들에게는 부당하고 근거 없는 주장이 될 여지가 있음으로 비종교인의 잣대로 글을 쓰기로 한다.
1. 대자연과 인간의 생사
높은 하늘로 날아가 본 사람(우주인)은 지구를 아름다운 지구별 또는 가장 안전한 우주선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인간은 우주인이다. 우주인의 시각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자.
그 옛날 그 사실을 몰랐을 때 인간은 우주와 대자연의 변화(순리)에 대하여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기상(일기 계절)과 기후 외에 일식과 월식 지진 화산폭발과 해일 혜성과의 충돌 그리고 빙하기와 같은 지구의 환경변화와 자체변동은 인간과 생명체 그리고 지형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지구에서 살기시작하면서부터 생존유지차원에서 극복하고 적응해왔다는 흔적이 기록과 유물로 남아 있다.
그중 지구생명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빙하기를 본다면....
“최근 수백만년동안에는 4만년을 주기로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하고 있으며 근래는 10만년 단위로 빙하가 확장하고 후퇴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마지막 빙하기는 약 만 년 전에 끝났다.
이러한 빙하시대가 어떻게 하여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설(假說)이 제안되었는데 아직 정설(定說)이 된 것은 없다. 그것은 태양의 복사열량의 변화에서 원인을 구하는 천문설, 지구궤도나 지축의 주기적 변화에서 구하는 기하설(幾何說), 지표로부터의 열복사량은 대기 중의 수증기 ·이산화탄소 ·오존 ·미립 화산재 등의 양에 좌우된다는 흡수설, 대륙이동이나 수륙분포 ·해류 등의 변화에 원인을 구하는 지문설(地文說)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현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흡수설”에서 마지막빙하기의 원인이 인도네시아의 화산폭발로 인한 대기온도의 하강이라 본다는 측면으로 그 발생가능성을 보면...
“ 넓은 뜻에서의 활화산은 세계에서 약 850개가 알려져 있으며, 그 중 약 80 %는 태평양 지역에 분포한다. 매년 40개 내외의 화산분화가 보고된다. 활화산의 연령은 수천~수만 년인 것이 많으며, 드물게 수십만 년의 것도 있다. 또 지금은 활화산으로 취급하지 않는 화산이 언젠가 다시 분화가 일어나 활화산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다.
파푸아의 라민톤화산은 사화산으로 취급되었으나 1951년 갑자기 분화하여 3,000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
이것은 지구빙하기10만년주기설과 관계없이 빙하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가된다.
화산재와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이 대기권의 구름과 뭉쳐지면 햇빛이 차단되어 기온이급강화하고 육지생물이 얼어 죽으며, 바닷물이 얼어 바다의 염도가 높아지면서 바다생물이 전멸하며, 해수면이 낮아지고 대륙이 붙어서 인간이 살아있다 하여도 식량과 전쟁으로 전멸할 수도 있다.
또 하나 지구온난화로 기존의 빙하가 녹으면....
“빙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민물을 저장하고 있으며 이는 바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물 저장고이다. 빙하가 차지하는 면적은 지구 육지의 약 10%이고 이들 중 대부분은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에 넓은 빙상(ice sheet)으로 존재한다. 빙하가 저장하고 있는 담수는 전체 민물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약 60미터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가설이지만 지금의 바닷물염도를 현저히 낮추는 작용을 하게 되면서 해류가 없어지고 기상이변이 심하여 지구생물의 대부분이 죽고 말 것이다.
우선 해수온도와 염도차이로 바다생물이 죽고, 해류가 없어질 경우 기상이 달라지며 기후가 바뀌어서 지금의 육지생명체는 대부분 사멸하고 해수면상승으로 농경지와 삶터가 소멸되면서 인간의 생존여부는 위협을 받게 된다.
지금의 해안선은 약1만년 이전 마지막빙하기에 형성되었다한다.
저지대 녹색평원이 바닷물 속으로 사라지면서 공룡도 사라지고 간빙기 때 아프리카열대지역에서 전 대륙으로 이동했던 호모에렉투스도 빙하기 때 남하하는 호모사피엔스에게 그 자리를 남기고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2. 대자연과의 공생을 염원하는 민족종교와 외래종교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대자연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하려 했을까?
과학으로 그 섭리를 풀지 못했을 것이므로 그 위대함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 소풍가는 날 잡히면 그날만은 비오지 말라고 누구에겐가 빌었을 것이다.
새해첫날아침 일출을 보면서, 정월대보름 달맞이하면서, 풍습이 아니라도 첨단과학의 산물 인공위성발사하면서 까지 우리나라과학자들이 고사를지내고 절하고 비는 모습이 TV중계가 된 적이 있다.
그들은 1만년의 역사를 가진, 마지막빙하기에 남하한 북방의 호모사피엔스의 자손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일대에서 살았고 따뜻한 지역을 찾아 이동을 했다.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미인디언(아파치)과 잉카,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 타미르(천산)지역에서 국가를 이루면서(환인시대/환웅) 그 후손(단군시대)은 남서쪽의 메소포타미아(수메르문명) 남동쪽의 몽골과 동이족(황화문명: 은 하나라 부여 옥저 고조선)이 된다.
아프리카에서출발 남방을 거쳐서 원주민이 되었던 구석기시대의 호모에렉투스는 빙하의 해빙으로 그들의 삶터가 황해로 수몰하고 살아남은 일부는 중국대륙 일부는 한반도 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나 남하하는 북방호모사피엔스에게 생존경쟁에서 지거나 혼혈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신석기시대부터 남하하기 시작한 북방동이족의 이동은 청동기와 철기시대까지 계속된다.
고대국가 삼한(마한진한변한)은 남진한 북방동이족(예맥인)의 유민들이며, 갑자기 나타난 가락국(김수로) 신라(박혁거세) 고구려 백제의 시조들은 동이족지배층의 자손들 일 것이다.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은 하나라의 우임금 순임금 그리고 치우환인 및 공자는 동이족이며 그 뿌리는 환인-단군(한단고기 참조)이다, 고조선 부여옥저 고구려는 물론 금나라 청나라도 동이족이 만든 동이족의 역사이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와는 달리 점령지에서 철저히 현지화 하여 토속민족과 융화하며 혼혈(글로벌민족-다문화민족)화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후손들끼리 전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천부경”이라는 민족경전이 있었고 ‘천지인’,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같은 선상에 두면서 ‘홍익인간’의 실현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 이념은 약 일 만년이전의 상고시대 이래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민족혼이라 한다.
최소한 4,041년(檀記) 이전부터의 우리민족토속종교(환인 환웅 단군시대의 천부경에서는 대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시종(始終)이 없는 우주”에서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상자)이다.”라고 규정하며)로 인간의 삶을 우주의 조화와 질서에 맞추고자하고 있다.
이후 2,560년 전 공자의 인(仁), 맹자의 인의(仁義), 즉 선한 본성(도덕론)에서 우러나오는 덕치(德治)로서의 왕도론(王道論)을 ( 어진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정치 ) 바탕으로 하늘의 뜻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실천하였다.
천부경의 “홍익인간”이 공자맹자의 “백성은 곧 하늘이다”(중국: 황제를 천자(天子) 칭함)로, 그리고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다”라는 말은 이씨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정치화두인데,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정치의 기본정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이고, 이것은 현대인의 삶을 지켜주는 기본이 되고 있다.
군국주의 일본은 천황(天皇)과 그의 백성 천자(天子)가 있었는데, 천황을 위한 천자의 죽음을 영광이라 했으니 히틀러의 민족우월주의와 함께 전자와 비교가 된다.
Leading country USA(미국)가 들고있는 잣대인 인권은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 불교와 한반도인의 관계는..... ?
기록에 의하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42년-신라 유리왕19/김유신의12대조)는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파사 석탑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오자 공주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으며, 허 왕후와의 사이에서 난 왕자들 중 일곱 명은 지리산에 들어가 운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고( *527년 이차돈 순교), ......”라고 한다.
'가야'라는 말은 인도에서 '물웅덩이'란 뜻으로 건기 때 강이 바닥을 들어낼 때 그때까지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물웅덩이를 말하는데, 물과 양식을 구할 최후의 보루인 신성한 곳으로 인도의 옛 지명에 '가야'라는 말이 남아있다 하며, 김수로왕의 사당에서도 인도의 '가야'를 상징하는 문양이 발견되기도 한다. 북방계와 남방계의 교류가 있었고 도래(渡來)인들의 문명이 토착(구석기인)문명보다 뛰어난 그 무엇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약1900년 이전부터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가 국교가 되었던 것은 백성들의 인간적인 고통을 헤아리려는 통치자들의 덕치(德治)의 일환이며, 순교한 이차돈도 왕족으로써 만백성을 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모험(불교의 신라 국교(國敎)화를 반대하는 신숭배자들에게 부처의 존재를 보이기 위하여 자신의 목을 자르게 함)을 감행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지금으로부터 약3100( 입멸로부터 시작한 佛紀는 3035년)전에 흔히 알듯이“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사자후(법문을 이름)를 하며 태어났다고 한다.
역시 인간(我:우리)과 우주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 인도의 왕자로(브라만신분)써 카스트제도를 떠 바치고 있는 힌두교와는 대치되는 이념으로 왕족이기에 기능한 일이었을 것이며, 주변(왕가)에서 출가 후 벌어진 일을 전생의 인연으로 해석함으로써 카스트제도와 마찰을 피하려했으리라.
29세때 인간의 생노병사에 의문을 품고 12년간을 당시의 신 숭배종교 와 고행을 하며 길을 구하려(구도)하였으나 정법을 찾지 못하다가, 새벽별을 보고 홀연히 불도를 이루었다(화엄)한다.
깨달음의 관점, 즉 그만의 잣대 일 것이다. 그것을 “마하반야”라고 한다.
그의 마음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던 잣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왕태자로써 대대로 상속되는 신분계급제도의 타파와, 알지도 못하는 신에 속박된 민중(백성)을 구하려는, 진정한 왕의 길(德治)을 택한 사람으로 진정한 ‘홍익인간’정신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진정한 승리자(왕으로서의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이겨낸)로서의 그는 불교사찰의 대웅전(大雄殿/Great Hero's Hall)에 동상(化身)으로 모셔져 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인간(백성)이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고, 결국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것을 통하여 더 큰 영역(공간)과 긴 시간을 통치하는 길을 찾은 정복자(영웅)가 된 것이라 보인다.
사실 그의 법맥은 현대서구인(주로 엘리트계층)에게도 크게 호응 받고 있다함으로 지금까지는 과히 세계 제일의 영웅이자 스승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것이 공(空)사상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인가 싶다.
그는 깨우친 바를 45년간 아함 방등 반야 법화 열반경으로 나누어서 무지몽매한 민초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84,000가지의 방편으로 법문으로 설하였다.
아마도 자기의 백성이 대대손손 이어질 하급신분을 벗어나고 신들의 선택(윤회)을 강요받지 않으려면, 그리고 지금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인연설’ ‘중도사상’ ‘무아사상’ ‘업장소멸-해탈‘을, 나아가 행복을 구하는 방법으로 ‘자비(慈悲)’ ‘상구보리하화중생’,, 등등을, 그리고 사후(死後)는 ‘열반(니르바나)’ ‘불생불멸(不生不滅)’등등을 목표로 하며, 일상은 탐진치를 여의고 진여의 자리(본마음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라 했다.
그는 최후에 “미묘(微妙)법문, 실상무상((實相無相), 청정법안(淸淨法眼), 열반묘심(涅槃妙心),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제자마하가섭에게 부촉하고,
아난에게는 법맥보존을 당부하면서 “ 법은 본래 없는 법을 법으로 하니, 없는 법도 또한 법이라, 이제 없는 법을 전해주노니, 법이란 법이었지 일찍이 법이었겠느냐!”라며 80세에 열반에 들었다 한다.
즉, 우주만물의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나 대자연의 섭리 그 현상은 있다/진공묘유(眞空妙有)를 설한 것으로서, 후세에 그가 남긴 법도 불변하지 않으니 증진하여 현상에 맞는 법을 이루어 만민을 편안케 하라 라는 뜻이리라.
그 뜻에 따라서 남방불교(소승주의) 북방불교(대승주의)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원불교 등등으로 자유롭게 편하게 나뉘어져있고 이웃종교와도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
이 마지막 법어는 한민족경전 “천부경”의 서두‘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와 말미‘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즉 “하늘( 우주)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 와 동의로 비교 된다.
또한 팔만대장경의 핵심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리고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므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 및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으니라." 의 법어들과 와 같은 맥락이다.
이 돈교법(頓敎法)은 제7세 부처(붓다)에서, 제8-마하가섭, 제9-아난, 그리고 남천축국 왕의 셋째 아들인 보리달마-제35세를 거쳐 제40세 혜능대사까지 그 맥을 잇는다고 혜능대사가 ‘육조단경’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제1세에서 6세는 누구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제40세 혜능대사는 왜 신라의 승려가 자기 목을 가져갈 것 이라고 예언했으며, 또 왜 후계를 정하지 못했는가?
인도 공주 ‘허 황옥’과 ‘석가모니 붓다’와는 어떤 관계가 있고, 그의 선조는 진정 누구인가?
그는 환인의 자손 수메르인(메소포타미아문명 주도세력)과 중앙아시아인과는 무관한가?
동쪽나라의 공자와는 무관한가? 한반도인과는 무관한가?
결국, 석가모니붓다의 혼은 혜능대사의 가르침( 육조단경 )을 통하여 한국불교 조계종에서 이어받고 있다. 우연일까?
혜능의 돈교사상은 돈오(단박에 깨침)에 두고 있는데, 인간을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석가모니가, 경전으로부터의 해방을 달마가 했다면, 그는 수행(돈수)으로 부터 해방을 시킨다.
혜능대사는 “만약 뒷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 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離衆生無佛心). 즉,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 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불법돈교의 40대 제자가 전하는 붓다의 정법으로서, 깨침의 잣대를 반야(지혜의 눈)로 하면 인간이 우주, 즉 부처임을 말한다. 선가에서는 ‘구름이 걷히면 곧 하늘이다.’라고 한다.
길가에 적혀있는 문구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말 일 것이다.
“인내천(人乃天)으로 대표되는 천도교의 인간관은 사람을 한울님처럼 존엄한 존재로 본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람의 존엄성이 곧 한울님의 존엄성과 같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간평등과 존엄성을 신앙의 실천적인 핵심으로 삼는다.”
1대 최제우 3대 손병희로 이어지는 순수 토종종교로서 천도교는 현세주의적인 종교로서 모든 사람이 한울님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정치·경제·문화 체제가 이루어지도록 힘써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자는 종교이다.
이와 같이 “천도교”의 人乃天사상은 뿌리는 [천부경의 홍익인간] [공자의 인] [석가모니의 불심]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다라서 한국의 전통종교를 “유불선(儒彿仙)”이라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한국은 “유교-불교-선교-기독교”로 보아야 할 것이다.
11억 신자를 가진 기독교최대의 교파(53%) 천주교(로마가톨릭교회)를 비롯하여 2만 여개의 종파(약21억)로 세계인구65억(2005년말기준)의 32%를 점하고 있다.
한국인의53.6%가 종교를 가졌고 그중 불교 23.2%, 개신교 19.7%, 천주교 6.6%, 유교 0.5%,원불교 0.2%, 천도교 0.1%라 한다.(1999년 통계청자료)
말하자면, 동양종교(유불선)24% 서양종교(기독교) 26.3%로 비슷한 비율이다.
기독교의 교리와 유불선의 교리중 공통적인 점을 개인소견차원(화합)에서 비교해 보고자한다:
기독교는 세계에 2만개 정도의 교파가 있으며 한국에는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 그리고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의 여러 개신교회가 있다. 교파마다 교리도 다양하지만 기독교의 공통된 가장 큰 특징은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자) 및 속죄 사상이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는 약3년(30세~33세)간 공생애(公生涯)인으로서 복음을 전한다. 여타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세계사적 인물에 비하면 대단히 짧은 기간이다.
그리고 전해지는 그의 가르침과 행적 또한 대단히 간단하고 단순하다.
합리적사고로는 ‘광야의 시험’(40일주야금식기도)으로 그의 잠재능력이 발휘되었다고 보아야하는데 이 사건은 단박에 깨우치는(돈오) 불교적인 발상과 일치한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는 먼저 저 여인을 치라"가 성인으로서 첫 행위이다.
이는 유대율법에 대한 도전으로,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계율을 어길 수 있다. 이것은 자유와 평등을 암시하는 인간중심사상이다.
또한 속죄하고(불교에서는 참회)자제함으로써 나중에 나타날 나쁜 결과를 불러올 원인(북교에서는 업장)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인연(인과)사상과 일치한다.
탄생 시에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열두 살이 되던 해,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자신을 계시(啓示)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일러 주었다.’
‘자기가 메시아임을 밝히고,,,, “사람의 아들[人子]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역시 우주(대자연)와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며, 유대교(율법)의 근본사상도 그러함으로...를 깨우친 상태에서 그 점을 알려주는 메시아임을 자처한 것일까?
그는 율법과 동방사상(공자 석가모니)을 비교하며 그 근본을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상으로 40일이면 가능하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 인과법(인연법)을 설명하려면 과거(前생) 현재(今생) 미래(來생)를 동원한다. 즉 ‘ 원인에 대한결과는 시차가 있을망정 오차는 없다.’에서, ‘만약 지금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면 전생을 보아야한다, 지금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살아있는 동안 못 보면 다음생애 에서라도 본다.’ 이다, 이러한 인연법은 7회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인(因)의 성격에 따라 그 연(緣)이 달라진다고 한다.
부활은 윤회(미래생)를 의미하므로 현재의 고통을 참거나 즐기는 삶의 지혜이며,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영원히 사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완성시킨 종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3대종교 중 가장첨단사상을 탑재한 종교일까?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전통 사회의 악습과 부도덕한 관행을 폐지하고자 노력했던 사회개혁운동가였으며, 평등주의를 주창한 박애주의자로서 인자, 중용, 인내, 용맹 등으로 그의 인품이 묘사되는데, 이는 신의 사도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과 교우들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정치가, 행정가, 군인으로서 모든 무슬림들이 본받아야할 인생의 표본이 되고 있다.
570년 4월 22일, 메카의 지배부족이자 구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쿠라이시족(꾸라이쉬족)의 하심(하쉼 Hashim) 가문에서 유복자로 출생했다. 40세가 된 610년, 세속적 생활에서 이탈하여 메카 교외의 히라산(山)에 있는 동굴에서 명상생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통하여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알라의 계시를 모은 것을 《코란》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함마드가 말한 내용으로서, 그가 죽은 뒤 신도들이 수집·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코란》은 650년경, 제3대 칼리프인 오스만의 명을 받들어 만들어진 표준본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으며, 유대교·그리스도교 등 유대계의 여러 종교를 완성시킨 유일신 종교임을 자처한다.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로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지만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관대하고 자애에 넘쳐 잘 용서하고, 잘 들어 주고, 잘 보아 준다. 알라는 진리이며 빛이며 “동도 서도 알라의 것, 어느 쪽을 향해도 알라의 얼굴은 거기에 계신다. 골고루 존재하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코란 2:11)고 한다.
불교의 법신불(우주)과 보신불(관세음보살)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는듯하다. 동방과의 무역상을 하면서 유교와 불교를 배우고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거상의 재정과 조직으로 혁명을....(?)
또한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구성하는 3가지로 첫째는 ‘지(知)’인데,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인데, 마음으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인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즉 5주 등)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
역시 공통점이 있다.
종교의 진실여부?, 이 문제(믿음)는 지극히 예민하므로 문제 삼지 않음이 우문우답을 피할 수 있으려니와 앞에서 언급하는 횡설수설도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
그러나 반드시 언젠가는 숨어있는 빙산처럼 어딘가와 부디 칠 것이리라..... 그리하여 침몰하는 여객선처럼 적지 않은 희생을 치룰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종교인들(한국: 약50% 세계: 약50%)도 피해를 입을 수있다할 것이다. 지금의 테러문제, 그리고 국지전쟁은 물론 미래에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독립되지 못한 부문은 현대인의 정신영역에 맞추어지며 다소 변질이 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남아서 힌두교 불교 천주교 회교 기독개신교 등으로 잘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신의 뜻을 각자의 입장(이념)대로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구원의 반대방향으로 끌고 간 많은 역사가 있다.
십자군원정, 유럽의 300년종교갈등과 30년종교전쟁, 청교도혁명, 인도의 종교분쟁과 4국분열(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이란 및 이라크 종교파벌분쟁, 탈레반의 회교성전, 아프리카의 종교(회교-기독교)분쟁.... 등등
중남미의 잉카문명과 북아메리카인디언의 몰락은 문명과문화의 충돌이전에 공존을 허락할 수없는 점령자 서구인의 종교적 신념이 더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유불선이 공존하던 한국의 경우, 새 종교의 정착기에 이차돈의 불교 김대건의 천주교 등 순교가 없지 않았으나 수많은 자연발생적인토속신앙과 함께 외국에 비하여 비교적 잘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긴 역사만큼이나 자체적인 발전을 하여, 불교의 경우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으로 종파가 분열되고, 천주교 개신교도 여러 가지이름으로 나누어져있고 이슬람교도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져있다.
문제는 그 창시자의 가르침을 현재까지 전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당시(창시자시절)의 상황으로 언어와 문자 기록수단이 마땅하지 못하였으므로 선각자와 지도자들의 이해 또는 번역이 다를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종교학자들이 연구 중 이라한다.
이로 인하여 분파로 나누어져 내부분쟁이 계속되며 그리고 역사와 과학과의 분리 및 타종교와의 비판적인 차별적 이념과 그 믿음의대상문제로 갈등의 불씨는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신념을 모독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대소전쟁이나 이념분쟁 국가의 흥망과정에는 종교시설이나 서적 유적 등을 소멸시켜 승리자 또는 통치자집단의 권력 강화를 기하였다. 비민주적사회에서 대저 통치자의 통치이념은 통치자의 종교적 신념과 따로 가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정치(권력)와 손잡는 종교는 정치권력의 흥망에 따라 많은 희생을 치루며 그 궤를 같이하는 경우를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중세의 신성로마제국처럼 종교적 신념과 정치가 맞물려가고 있다.
이슬람교의 경우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삶을 조율하는 이정표가 될 법한 “코란”은 개조 마호메트(570-632)이후 한 번도 보완하거나 수정 된 적이 없다고 하여 여타종교의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천주님 알라.... 성부-성자, 법신불 그 대상은 같다(?).
천사와 가브리엘 그리고 성령과 보신불(불보살)은 각각 같은 의미이다(?).
삼위일체와 부처(붓다)는 같은 의미이다(?).
화신불(석가모니)와 무함마드는 같은 역할을 한다(?).
두 손 모아서 기도하고, 합장하고... 같은 모습이다(?).
이슬람의 절하는 모습과 불교-유교의 절하는 모습과 정신 그리고 사람의 신분은 비슷하다, 그 대상만 다르다(?).
사랑 평등 자비 인 홍익인간정신.... 목적과 기능이 같은 범주에 있을 것이다(?).
불교의 불보살계, 기독교의 10계, 무슬림의 샤리아는 공통점이 많아서 계율만잘 지키면 아무리 섞어 놓아도 문제가 없으나, 유일신이라는 전제로 이웃종교를 인정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 유일신이 우주 대자연 창조주 조물주 하느님 하나님 일 것이다. 이름이 다를 뿐......
그분은 이치이고 섭리이고 진리이고 순리이고 양심이며 인간의 본심이다.
3. 잘난 인간
신의이름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인간은 신을 그들만의 필요존재로 창조하고 죽이고 했었지만 다른 일부의 인간은 그들의 신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우주의 현상은 공정하게 우주활동을 할뿐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에는 오차 없이 반응한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인간은 우주만물의 하나이지만 우주를 살리고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따라서 인간은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 할 수 있다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와 지구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순응할 때만 가능 할 것이다. 그 위대한 법칙과 순리를 극복하면서 살아남는 인간도 있기에 때로는 신의존재를 의심하지 못한다.
“불가사의”라고불리는 인간의 문명을 신의작품이라고 칭찬한다. 인간의 한계를 측정하는 상식적 기준(잣대)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잠재능력 그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헤아릴 수 없는 신이다.
현대의 첨단과학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신을 헤아리지만 인간의 잠재능력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크기는 무한하며 (즉, 무한한 존재공간과 측정 불가능한 움직임의 속도), 그리고 움직이거나 머무는 시간영역 또한 과거 현재 미래를 순간적으로 넘나든다.
그것은 또한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형상조차 표현할 수는 없으나, 의식적으로 집착하거나 머물면 그 공간의 어떤 모양으로 바뀐다.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무의식)이 집착(미련)과 고정관념(컴플랙스)에 묶이지 않고 그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지 않고 벗어나면 신의영역이라 불리는 불가사의에 진입한다.
인간은 신의영역을 의식하거나 보지는 못하나 무한한 욕구의 실현과정에서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서 인간의 한계라고 말하는 어떤 영역에 도달함을 본다.
일상에서는 물론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줌을 경험했을 것이다.
본인의 마음 따라 얻어지는 결과는 물론 본인의 것이려니와 주변에 끼쳤던 영향으로 되돌아오는 결과도 본인의 마음 탓이므로 인생 즉 삶의 주인은 본인이다.
인생사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원인과 결과는 자기 몫이다.
“만사가 신의 뜻”이라함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을 이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는 다른 뜻일까?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무시하면 천벌(하느님의 벌)을 받는다고 한다. 만고의 진리이다.
특정종교의 “계를 어기면 지옥을 간다, 잘 지키면 천당을 간다” 혹은 “안 믿으면 지옥가고 믿으면 천당을 간다.” 천당과 지옥은 하늘과 땅을 혹은 자유와 속박, 그리고 평화와 고통 등의 의미일 것이다. 지옥보다는 천당이 훨씬 나아 보인다. 그러나 그곳은 사후(死後)에나 가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을 참아낸다. 사후의 천당행을 약속받으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위로 삶을 마감하고 천당을 가는 것은 반칙이라서 안 된다고 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천당행 약속을 믿고 죽을 때까지 고통을 참거나 즐겨야 한다고 한다. 그 약속의 믿음여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것은 신의 뜻에 따라서라기보다 본인의 의사 즉 본인의 원인에 따라 결과가 정해짐을 말하는 것이리라.
결국 신은 그 어떤 것도 책임 지지 않는다.
만사는 인간 본인의 탓이므로 본인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주변도 본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연이라 불리는 것이리라.
홀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도 부모와의 인연이 있다. 공간과 시간의 인연과 함께.....
그리고 연에 따라 살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못 다한 연은 인을 만든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의 답은 각자의 몫이다.
2009.07.05
김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