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간)을 논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맛도 모른 채 어머니의 몸에서 나오는 모유 혹은 맛과 영양이 비슷한 우유를 먹는다. 그리고 인위적인 어머니의 젓-떼기 노력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잘도 먹는다. 잘 우는 아이는 수도 없이 혹은 배고프면 울어서 먹는다.
젓-떼기 과정에서는 모유나 우유와 맛이 비슷한 쌀-물죽 쌀죽 밥알 혹은 이유식을 먹다가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서 가족들이 즐기는 음식과 맛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맛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이가 가족과 살면서 말을 배우는 과정과 같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말을 깨우치면서 발음과 함께 별도로 문법을 배우지 않듯이 음식을 먹으면서도 의식적으로 맛을 배우지 않으며 선택의 여지없이 그저 주어진 맛을 익혀 갈뿐이리라 보아진다. 가끔은 먹여주는 음식을 뱉어내기도 하는데 좀 더 자라면 편식하는 경향으로 나타 날 것이지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입맛은 이렇게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어진 맛을 익혀왔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입맛은 언제부터 각기 다르게 되는 것일까?
각기 다른 토질에서 농법이나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곡식과 야채의 맛은 다르다. 집집마다 샘물의 맛 장맛이 다르고, 전수되는 조리법이 다르다. 즉, 음식풍이 다르기 때문에 조리법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간장 된장 김치의 맛은 절대 똑같지 않다.
캐나다의 영양인류학자인 필드하우스는 개인이 커 나가면서 입맛과 음식 습관이 어떻게 정착되어 가는지를 다움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개인의 음식 습관은 대체로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확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다고 여긴다.
사람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어머니로 부터 입맛과 식사 습관을 익힌다.
유아기 때는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음식의 맛과 습관을 배운다. 특히 가족끼리 함께 먹는 식사에서 각종 식사규칙과 금기를 부모님과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적받고 체험학습을 한다.
이것은 마치 말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그 후 청년기를 맞이하여 학교, 직장, 교회와 같은 사회 집단을 통해 입맛과 식사습관의 두 번째 과정을 겪는다. 가족이외 사람들과 같이 먹을 때의 규칙,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대체로 이 때 정해진다.
마지막으로 청년기에 들어와서는 영양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인 캠페인과 전문가들의 각종 조언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한 개인의 음식습관과 입맛이 결정된다.
사람들은 영양과 건강 캠페인에 따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식사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한다. 커피를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시면 간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영양학자들의 연구결과는 곧장 우리의 음료 선택을 커피 지향으로 만든다. 콜레스테롤과 지방, 다이어트, 그리고 암 예방을 위한 각종 조언들이 매스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우리의 고유한 입맛이나 식사관습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수시로 인식되는 정보에 따라 각자의 건강식과 체질상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잘 가린다.
또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집단의 성격에 따라서도 음식 습관이 바뀐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목에 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매일같이 비계가 많은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설현장의 함바식당 메뉴는 염도가 높다, 땀을 많이 흘리는 고객의 염분을 보충해야하는데 자연적으로 입맛이 이를 조정하므로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염도(간)가 조정 되었을 것이다.
오피스빌딩가의 식당과 제조공장의 식당도 이와 같은 이유로 맛을 달리하고 있다. 철재로 작업하는 공장에서는 방청유 절삭유 혹은 용접가스의 냄새를 맛 거나 옷에 묻히게 되고 소음으로부터 스트레스가 생겨진다. 따라서 청정한사무실이지만 신경성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들 또는 그냥 배고픈 사람들과는 생체적인 욕구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전통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전통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 아이들은 김치찌개보다 햄버거와 콜라를 좋아한다. 이렇게 그 사람이 속한 연령이나 사회 집단의 성향에 따라 우리의 입맛은 변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의 경험적 공간도 식사습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가 살아가면서 경험한 공간이 단지 좁은 한 마을에 한정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세계 여러 나라에 걸쳐 있었는지에 따라 음식을 선택하는 폭과 종류가 달라진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나 그 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만 사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던 시절의 사람들은 자신이 줄기차게 먹어 온 음식의 맛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라고 여겼다. 우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할머니음식솜씨를 자랑하며 그리워하는 것을 보았고, 객지에 살면서 은연중에 고향의 그 음식점과 그 맛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시대에 산다.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가가 존재하고 맛으로 소문난 식당에는 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소문난 음식 맛을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 참맛을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단지 소문 때문에 그 식당의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음식의 진짜 본맛을 정확히 알고 평가하는 '미식가'는 감히 존재하기 어렵다한다.
다만 어떤 음식은 어떠한지를 잘 구별해 내는 '맛의 감별사'가 존재할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음식의 맛이란 마치 말의맛과 같기 때문이다. '맛의 감별사'는 사투리와 표준말을 구별해내고 어느 지방의 사투리다 는 정도를 알아내는 역할과 같아야 한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짐 속에 준비해 가는 라면 고추장 멸치 김치 김 등은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매운맛과 깔끔한 맛을 동시에 제공해 주는 맛의 전령사이다. 여행지에서 유명하다는 외국음식을 몇 번 먹고 나면 생체리듬이 깨지고 급기야는 무기력감마저 든다, 이때 김치 한조각 고추장에 찍어먹는 멸치 한 마리 시원한 라면국물 깔끔한 김 한 조각의 맛은 여행지최고의 음식의 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맛본 외국인은 그저 맵다고만 느낀다. 그들은 우리의 그것 속에 숨어 있는 깔끔한 그 맛과 정서를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도 평소에는 그런음식의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신선한 공기의 맛과 같이 상황적이다.
중국인들이 즐긴다는 요리 중에 '위샹뤄쓰'라는 음식은 글자 그대로 '물고기 맛이 나도록 만든 육-고기 요리'라는데 그 물고기의 맛이 도대체 어떤 맛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저 물고기 맛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느낌'의차이이다.
그런데 그 '느낌의 차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음식 맛의 느낌은 정서적이고 상대적이다.
한국적인 음식 맛이 있으면 일본적인 것이 별도로 존재한다. 전라도의 맛이 있으면 경상도의 맛도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음식맛과 각자의 입맛을 두고 좋고 나쁘다고 평가 또는 비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방대신 특징적인 입맛을 통해 그가 자라온 배경과 문화를 읽고 음미 하는 편이 올바르다.
입맛이 반복해서 먹어도 최소한의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그 음식에의 호의적 반응이라 본다면,
음식-맛은 음식에 존재하는 고유의 맛 일 것이다.
입맛이 상대적 평가이면 음식-맛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미식가는 입맛을, 맛의 감별사는 객관적인 맛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모양이 비슷하여 전주콩나물국밥 전주비빔밥 이라 불리는 모두가 고유의 전통적인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 맛이 그 맛인 줄로 알 수밖에 없다.
음식의 맛이 객관적존재라면 입맛은 주관적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음식과 그렇지 않은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개인적 입맛(성향)에 따라 맛있고 맛없음이 결정되고 느낄 뿐이다.
특히 개인의 건강컨디션 생체리듬 공복여부 그리고 식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와 식사환경에 따라 입맛이 달라진다.
웨딩뷔페의 음식 맛이 별로였다는 축하객들의 평가와, 그 옛날 아버지가 친구와 드셨다던 잊지 못할 그 선술집 김치 맛은 바로 식사환경(정서만족)과 관련이 있음을 증명한다.
누구와 어디서 뭘 하면서 먹느냐 일 것이다.
몇 가지로 한정된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에 투정을 부렸지만 지금은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잘 먹는 반찬이라고 계속 주신 거고, 자주 먹는 우리는 맛의 효용체감원칙 때문에 입맛이 달라 진 것인데 양쪽은 다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정성이나 손맛이 덜하지 않았다고 했을 것이고, 우리는 점점 맛이 없어져 간다고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사람 혀의 간사함(입맛의 변화-효용체감의 법칙)일 것이다.
부부관계3년차에 맘이 변했다고 싸우는 신혼부부( 사실 마음은 변 한다), 같은 상황의 연속성 때문에 입맛과 같이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줄고(효용체감), 정은 깊어지며(학습이론), 공동의 관심거리가 변하기(가치관의변화) 때문이다.
이것(고정된실체는 부재하나 찰라생멸하는 실체는 존재한다는 법칙)을 인정하면 문제가 없어진다.
입맛과 사랑은 같은 이치이리라.
진정한 “미식가-맛으로 먹는 사람(?)”란 와인감별사와 같이 제한적인음식에 국한하여 존재하므로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수준만으로 음식이 갖고있는고유의 객관적인 맛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극히 주관적으로 짠지, 단지, 쓴지, 매운지, 신지를 가늠만 하는 '맛의 감별사'가 있어도 안 된다.
또한, 염도 0.6-0.8이라는 표준적인 측정수치만으로 짜다 싱겁다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
차려진음식들과의 조화를 위하여 상황에 따라 염도를 달리하며, 또 계절별 야채의 수분함량과 성장속도가 달라서 염분의 삼투압현상이 각기 다르기때문에 조리사가 이를 조정해야한다.
또한 그날메뉴의 특성을 설계하는 영양사와 최종적인 맛과 완성도를 확인하는 조리책임자 주방장의 몫이다.
정서적으로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이라면, 한식의 언근-매운맛과 얼큰-시원한 국물 맛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맵고-쓰고-시고- 짜고- 단- (맛의 5감이존재하는)-야채겉절이의 오묘한 맛을 어떻게 알 수있을까?, 단지 눈으로 먹을 것이다.
편식경향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거나 자신이 편식이 심하였거나 하여 음식맛을 두루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직업상이겠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맛을 논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국과 찌개의 염도가 달라야한다. 연 한맛의 국이 염도0.6이라면 진한 맛의 찌개의 염도는 0.8정도 이어야 한다. 통상 찌개는 한그릇에 담아 여럿이 나누어 먹고(앞접시사용) 국은 처음부터 나누어 국그릇에 담아낸다. 한식에서 찌개와 국은 같이 나올 수 있고 국은 필수이나 찌개는 옵션이다.
즉, 특성상 담는 그릇이 서로 다르고, 같이 내는 반찬이 다르기 때문에 염도가 달라야한다. 만약에 이것을 같은 방식으로 먹는다면, 국은 찌개보다 싱겁다 혹은 찌개가 짜다고 평가를 하게되어있다. 찌개와 조화를 이루는 반찬에서는 짠 반찬의 배합이 허락되지않으나 국에서는 허락된다.
예를 들면, 콩나물을 조리할 때 그 용도에 따라 방식이 달라야한다. 어떤 반찬들과 메뉴가 구성되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떤 맛과 색상을 내야하느냐이다.
색상- 맛- 염도- 모양 씹는 맛- 은 어떻게 할 것인지 설계가 되고,
찜이냐 - 데쳐서 나물로 무칠 것이냐 - 볶을 것이냐,
삶은 후 찬물에 헹굴 것이냐- 건져서 식힐 것이냐,
물을 많이 붓고 삶을 것이냐- 거의 붓지 않고 삶을 것이냐,
소금을 넣고 삶을 것이냐- 그냥 삶을 것이냐,
뚜껑을 덮고 삶을 것이냐 -열어 둔 채 삶을 것이냐,
무엇과 섞어서 할 것인가 - 게맛살- 부추- 피망- 당근- 부추- 실파- 그냥,
소금으로- 새우젓국으로- 간장으로-고추장으로, 깨소금으로- 참기름으로 ? 등등 ....
이런 음식을 대놓고 "콩나물은 어떻게 해야 맛이 있는데..... "하면 음식디자인한사람의 의중은 모른 채 자기수준의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 된다.
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체를 고려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 된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면 집안음식 맛 손맛을 전수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구박하는 것처럼 되므로 그것도 조심해야 될 일이다.
전라도에서는 전라도음식 맛을, 경상도에서는 비릿한 바다향기, 강원도에서는 산채향기, 서울에서는 팔도사람들의 입맛답게 각양각색 도는 표준화시킨 맛을 느껴보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먹는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고 예민한 감각과 혼을 쏟아 붓는다.
같은 이름의 음식이지만 계절에 따라 음식 맛을 달리하고,
같이 구성되는 메뉴에 따라 맛깔을 달리하고,
재료의 상태 성장정도 기후와 원산지(토질)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하고,
고객의 취향에 따라 달리 한다.
그러나 한식의 특징이기도한 재료의 고유맛( 향기 색채 모양)을 살리려면 제철채소로 제철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하우스재배 수입 등으로 사계절요리로 변화되어 있다. 즉, 배추김치를 사계절 먹을 수는 있으나 계절별로 다른 맛임을 알아야 한다. 이경우 아무리 뛰어난 조리사라도 칭찬을 들을 수 없음도 알아야한다.
이와 같은 고려사항을 잘못반영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잘 몰라서 혹은 불구하고 고객의 양해를 구하게 됩니다.
2009.06.10
김 재성